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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말씀드렸지만 그 도사(道士)가 어떤 분인지 또는 사람인지 귀신인지 알 길이 없이 무조건 모험적으로 따라갔을 뿐이고 따라가 보니 인적(人跡)이 없는 심심산골 상상봉(上上峰) 바위틈에 앉아 있으라고 합니다. 칠흑 같은 밤이라 산등과 골짜기에서 들려오는 산짐승의 괴이한 울음소리 뿐 무섭고 떨려 잠시를 참을 수 없어 따라 들어간 것이 후회막급뿐이라 날만 새면 불문곡직하고 도망칠 생각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날이 밝으니 식사(食事)라는 것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배가 고픈 생각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망(失望)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말로만 들어오던 생식(生食)이라는 것을 하라는 것입니다. 추후에 알고 보니 그것은 솔잎가루, 풀뿌리가루, 칡뿌리가루, 보릿가루, 콩가루, 쌀가루 등속인데 그날 처음으로 내 앞에 내놓은 것은 아마 솔잎가루나 무슨 풀뿌리가루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가루를 한입 넣고 물을 마시니 목에 넘어갈 리 만무합니다. 먹을 수 없다고 하니 도사(道士)의 말이
"앞으로 먹을 것은 이런 것밖에 없으니 우선 이런 것을 먹는 훈련부터 해야 한다. 못 먹겠으면 물이나 마시고 그만 두어라. 며칠 굶으면 이것도 맛있게 먹을 터이니..."
그때 나는 절망(絶望)했습니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가 없이 한 이틀 꼬박 굶었습니다. 굶다보니 별 수 없이 먹어보기 시작하여 그런대로 그것으로 연명이 되었으나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탈출(脫出)을 기도했습니다. 약(約) 보름이 되었다고 생각되는 때, 그리고 또 6일이 지난 후, 그리고 또 열흘이 지난 후, 삼차(三次)에 걸쳐 탈출(脫出)을 시도(試圖)해 봤으나 번번히 실패(失敗)했습니다. 도사(道士)가 없는 틈을 타서 상당히 먼 거리까지 하산한 줄 알았으나 먼저 와서 길을 막아서서 빙그레 웃으면서
"소용없는 생각 말어. 못 가게 되어 있는 거야. 어서 올라가자."
나는 하산(下山)을 단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념이 결심으로 변해 도사(道士)의 말을 따라 보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소위 생식(生食)으로도 살아갈 수 있고 또는 능히 먹을 수도 있다는 자신을 얻기까지는 약(約) 7개월이 걸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 손으로 여러 가지 생식(生食)의 자료를 구하기도 하고 만들기도 하여 식사(食事)를 자급(自給)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만 일 년 동안 생식훈련(生食訓練)으로 세월을 보낸 셈이지요. 생식(生食)이 가능(可能)해지니 도사(道士)는 나를 데리고 소백산맥(小白山脈)과 태백산맥(太白山脈)의 일대(一帶)를 왕래(往來)한 모양인데 추후에 알고 보니 속리산(俗離山)을 비롯하여 강원도(江原道) 태백산(太白山)까지 태산준령을 모조리 답파한 것입니다. 이 산에서 며칠 저 산에서 몇 달 혹은 동굴(洞窟) 혹은 바위틈에서 바람과 비와 눈과 싸우며 원시적(原始的)인 수련생활(修煉生活)을 했지요.

당연한 물음입니다. 의복이랄 것도 못됩니다만 짐승의 가죽으로 하내의(下內衣) 같이 만들어 입은 것뿐입니다. 그리고도 풍한서습(風寒暑濕)을 막을 수 있는 체력(體力)이 되었다는 사실(事實)은 나도 신기하게 생각합니다. 오로지 정신력이 앞서 있었던 것과 사부님의 엄한 수련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수도(修道)는 무엇을 어떻게 하였느냐는 물으심에는 나도 그것이 의문이었습니다. 나는 그때까지 일년(一年)이 넘도록 하는 일이 너무 단조로워서 도사(道士)에게 여러 번 질문을 했지만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이 간단했습니다.

"생식(生食)에 자신(自信)이 생겼나? 여기 정좌(定座)하고 눈감고 가만히 앉아 있는거야. 아무 생각 말고, 마음이 완전(完全)히 비워져야 다른 무엇이 들어갈 거 아니야. 잡념이 시시각각으로 마음에 떠오르면 아직 멀었어. 부모생각, 세상생각, 허연 밥생각, 뜨뜻한 이불생각, 돈생각, 집생각, 그런 거 마음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는거야. 공부는 그런 거 없이하는 공부가 첫째야. 道는 무슨 道던지 허심(虛心)과 공심(空心)에서 출발(出發)하는 거야. 그리고 네 생각 네 판단 네 고집같은 네 모든 것도 다 없어져야 해. 그런 후에야 하늘의 法이 네게 들어오게 되는 法이거든. 아무소리 말고 눈감고 고요히 앉아 있어. 때가 되면 내가 알아서 모든 것을 가르쳐 줄 터이니까."

이렇게 되고 보니 그대로 할 수밖에 없어 몸과 마음의 기초훈련(基礎訓鍊)이 나는 일년(一年)이라는 고행(苦行)으로 겨우 이루어졌다고 보나 추후에 알고 보니 그 기초적 훈련(基礎的 訓練)은 일생(一生)을 통(通)하여 계속(繼續)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만 그런데 그때의 나의 생각은 참으로 복잡했습니다. 도대체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겠기에 이러한 고된 기초훈련(基礎訓鍊)을 시키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아마 나의 수도생활(修道生活)이 결국 입산(入山)한 시간만 계산해도 15년(一五年)이니 과연 내가 수련(修練)한 선도(仙道)가 그렇게 힘드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일심전력(一心專力)을 경주(傾注)하지 못한 것인지 의문이 갈 때도 없지 않았습니다.